‘이양인’이라는 새로운 성향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친구들과 잘 지내고, 대화도 무난하게 이어 간다. 그렇다고 수줍음이 많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주변에서 인기가 있는 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친구들이 열광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지 못하고, 유행이나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 무리에 속해 있으면서도 어딘가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듯한 감각을 느끼는 사람들. 혹시 이런 모습이 낯설지 않다면, 최근 심리학에서 주목받는 새로운 성향인 ‘이양인’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내향인도 외향인도 아닌 사람들
우리는 흔히 사람의 성격을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구분한다. 혼자 있는 시간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은 내향인, 사람들과 어울리며 활력을 얻는 사람은 외향인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구분은 오랫동안 성격을 이해하는 대표적인 틀이 되어 왔다.
그런데 정신과 의사이자 임상심리학자인 라미 카민스키는 여기에 새로운 유형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양인(Outrovert)’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내향인(Introvert)’는 안쪽을 향하는 사람, ‘외향인(Extrovert)’는 바깥을 향하는 사람을 뜻한다. 반면 ‘이향인(Outrovert)’의 ‘오트로(otro)’는 스페인어로 ‘다른 방향’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양인은 단순히 안으로 향하거나 밖으로 향하는 사람이 아니다. 애초에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에 가깝다.
무리 안에 있지만, 마음은 늘 바깥을 향하는 사람
이양인의 특징은 의외로 단순하다. 사람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성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일대일 관계에서는 다정하고 대화도 잘한다. 친구도 있고 인간관계도 유지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단 안에 들어가면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을 느낀다.
이를테면 이런 모습이다.
친구들과 함께 파티에 가지만 즐겁지 않다. 모두가 좋아하는 문화나 유행이 자신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분명 있지만, 막상 그 안에 들어가면 “여긴 내 자리가 아닌 것 같다”는 감각이 따라온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왕따나 사회 부적응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관계를 원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다만 집단이 요구하는 분위기와 자신이 느끼는 감각 사이에 미세한 거리감이 존재할 뿐이다.
‘왜 나는 남들처럼 즐겁지 않을까?’
많은 이양인이 가장 먼저 겪는 감정은 의문이다.
“왜 나는 다들 재미있어하는 것이 재미없을까?”
대학생 시절 클럽 문화나 단체 활동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쉽다. 다른 친구들이 열광하는 자리에 함께 가고, 어울리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막상 그 공간 안에 있으면 공허함을 느낀다. 억지로 맞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양인은 사람들과 관계를 끊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강하다. 그러나 자신이 진심으로 즐기는 방식과 다수의 취향 사이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종종 외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이들은 종종 ‘가짜 외향인’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즐겁지 않아도 사회생활을 위해 참여하고, 무리 속에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끝나고 나면 깊은 피로감을 느낀다.
예의는 바르지만, 쉽게 휩쓸리지는 않는다
이양인의 또 다른 특징은 ‘자기만의 기준’이다.
예의 바르고 배려심도 있지만, 집단이 요구한다고 해서 무조건 따르지는 않는다. 특히 “원래 다 이렇게 해”, “분위기에 맞춰야지” 같은 논리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충돌을 일으키는 혁명가 타입도 아니다. 조용히 거리를 두거나, 자기 방식대로 우회하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순응하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속에는 분명한 기준이 존재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때로는 개인주의자로 오해받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타인에게 무심한 사람이 아니라, 집단보다 자신의 진정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 가깝다.
부모는 왜 이들을 걱정하게 될까
이양인의 성향은 어린 시절부터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단체 활동을 유독 힘들어하거나, 또래 무리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일을 어려워한다. 그렇다고 말수가 적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어른들과는 대화를 잘하고, 일대일 관계에서는 친절하고 다정하다.
문제는 부모의 시선이다.
많은 부모는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곧바로 걱정부터 시작한다.
- “혹시 왕따를 당하는 건 아닐까?”
- “사회성이 부족한 건 아닐까?”
- “이대로 크면 힘들어지는 건 아닐까?”
실제로 이런 고민 때문에 상담실을 찾는 부모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양인의 경우, 상황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아이가 관계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중심의 관계 방식이 자신과 맞지 않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단체 놀이에는 쉽게 지치지만, 관심 있는 친구 한 명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데는 만족감을 느끼는 아이들이 있다. 또래 문화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자기만의 취향과 관심사를 깊이 탐구하기도 한다.
이런 아이를 단순히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
성격은 타고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양인의 성향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이건 타고난 걸까, 아니면 자라면서 만들어진 걸까?”
심리학에서는 오래전부터 ‘본성인가, 양육인가’라는 논쟁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둘 중 하나만이 정답이라고 보지 않는다. 사람의 성향은 타고난 기질과 성장 환경이 함께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어떤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함께 움직이고, 조직 안에서 인정받을 때 편안함을 얻는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집단 안에 있어도 끊임없이 바깥을 바라본다.
그들은 무리에 속해 있으면서도 질문을 던진다.
- “정말 꼭 이렇게 해야 할까?”
- “다수가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걸까?”
- “나는 왜 여기에 완전히 편안하지 않을까?”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감각일 수도 있다.
청소년기, 이양인이 가장 힘들어지는 시기
다만 이양인의 성향이 가장 큰 어려움을 만드는 시기가 있다. 바로 청소년기다.
중·고등학생 시절은 ‘소속감’이 매우 중요해지는 때다. 친구 무리, 반 분위기, 또래 문화가 삶의 중심이 된다. 이 시기에는 “누구와 친한가”, “어느 무리에 속하는가”가 큰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집단 안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는 아이들은 쉽게 불안을 느낀다.
흥미로운 점은, 이양인 역시 또래와 어울리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무리에 속하고 싶은 욕구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막상 그 안에 들어가면 불편함을 느끼고, 자신이 어딘가 어긋나 있다는 감각에 괴로워한다.
- “친구들처럼 되고 싶은데 잘 안 된다.”
- “같이 있어도 이상하게 혼자인 느낌이다.”
이런 감정은 때로 깊은 외로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청소년기에는 특히 주변 어른들의 이해가 중요하다. 억지로 단체 활동을 강요하기보다, 아이가 편안함을 느끼는 관계 방식을 존중해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버려 두는 기술’이 필요한 이유
그렇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의외의 답은 바로 ‘내버려 두는 기술’이다.
물론 이것은 방치를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를 혼자 두고 무관심해지라는 뜻도 아니다.
진짜 의미는 다르다.
아이가 자기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도록 기다려 주라는 것이다. 억지로 무리에 끼게 만들기보다, 자신에게 맞는 관계 방식을 발견할 시간을 허락하라는 이야기다.
부모가 불안한 마음에 지나치게 개입하면 오히려 아이는 스스로를 문제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쉽다.
- “왜 나는 친구들처럼 못하지?”
- “내가 이상한 건가?”
하지만 꼭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넓은 인간관계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소수의 깊은 관계를 선호한다. 누군가는 조직 안에서 안정감을 얻고, 누군가는 독립적인 환경에서 더 큰 만족을 느낀다.
중요한 것은 ‘정상성’에 맞추는 일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양인은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사람 많은 곳을 힘들어하면 연애도 어려운 것 아닐까?”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양인은 집단 활동이 힘든 사람이지, 친밀한 관계 자체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일대일 관계에서는 깊이 있는 대화를 잘 나누고, 상대를 세심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관계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여러 사람과 가볍게 어울리는 것보다, 소수와 깊이 연결되는 관계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때로는 관계의 시작이 느릴 수 있지만, 한 번 가까워지면 오히려 오래 지속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성향보다 관계 방식의 궁합이다.
직업에서는 어떤 어려움이 생길까
현대 사회는 협업 중심으로 움직인다. 학교도, 회사도, 대부분의 조직은 팀워크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다면 이양인은 사회생활에 불리할까.
책은 이양인이 비교적 독립적인 직업 환경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프리랜서, 연구직, 창작 활동, 전문직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잘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곧 “회사 생활은 못 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많은 이양인은 사회생활을 충분히 해낸다. 다만 끊임없는 회식 문화, 과도한 친목 중심 조직, 지나친 집단주의 속에서는 쉽게 소진될 가능성이 있다.
핵심은 직업 그 자체보다 일하는 환경과 방식에 있다.
자율성이 보장되고, 자신의 기준을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면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양인의 강점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사회성이 좋고 적극적인 사람만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양인이 가진 강점도 분명하다.
첫째, 자기 기준이 분명하다.
쉽게 유행이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다.
둘째, 독창성이 높다.
집단 바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덕분에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감정을 깊게 성찰하기 때문에 타인의 마음에도 민감하다.
넷째, 자기 삶의 만족 기준이 비교적 명확하다.
남들이 인정하는 성공보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겉으로는 조용해 보여도, 내면은 매우 단단한 사람이 많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나는 차이
이양인은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사람을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비교적 일찍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언젠가는 헤어진다. 관계는 변하고, 삶은 끝을 향해 나아간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기억’.
함께했던 순간, 자기만의 경험,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취향과 시간들. 이양인은 남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기준보다, 자신이 의미 있다고 느끼는 경험을 더 오래 붙든다.
그래서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비교적 평온함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내 삶을 충분히 사랑했다.”
이 말을 할 수 있는 힘은 결국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자기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냈다는 감각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는 종종 ‘잘 적응하는 사람’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여긴다. 친구가 많고, 단체 활동을 좋아하고, 어디서든 쉽게 어울리는 사람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무리 안에 있으면서도 늘 한 걸음 떨어져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꼭 좋아하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기준과 취향을 지켜 가는 사람.
그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단지 방식이 다를 뿐이다.
어쩌면 이양인이라는 개념이 주는 가장 큰 위로는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조금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일 뿐이다.”
누군가와 똑같이 살아가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이해가, 살아가는 데 가장 큰 평화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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