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집은 지금과 같은 형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낮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자율주행 시스템의 상용화, 건축 자동화, 극심한 양극화 현상은 도시 구조와 주거 환경을 동시에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집’이라는 공간 자체가 단순한 거주 기능을 넘어 개인의 프라이버시, 경제력, 이동 방식, 인간관계 구조까지 반영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도시는 결국 사람의 관계로 완성된다
유현준 교수는 도시를 단순한 건축물의 집합으로 보지 않는다. 도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는 건물 자체보다 그 안에서 형성되는 인간관계라고 설명한다. 같은 공간이라도 어떤 사람들이 모이고, 어떤 방식으로 교류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때 서울에서 가장 상징적인 상권으로 불렸던 가로수길은 시간이 지나며 쇠퇴했고, 현재는 성수동 연무장길 같은 지역이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단순히 건물 디자인이나 임대료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도시는 결국 ‘관계의 밀도’로 움직인다. 사람이 머물고 싶어 하고, 다시 방문하고 싶어 하며, 새로운 경험을 얻는 장소가 살아남는다.
좋은 도시가 가진 3가지 특징
김대식 교수는 좋은 도시를 좋은 예술 작품과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그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놀라움이다. 좋은 도시는 방문한 사람에게 새로운 감각과 경험을 제공한다.
두 번째는 변화다. 도시를 방문하기 전과 후의 사람이 달라져야 한다. 새로운 시각을 얻거나 감정을 경험하게 만드는 도시가 오래 기억된다.
세 번째는 반복성이다. 한 번으로 끝나는 도시가 아니라 계속 다시 가고 싶어지는 도시가 좋은 도시라는 의미다.
파리 같은 도시가 대표적 사례다. 처음에는 낭만적인 도시로 기억되지만, 여러 번 방문할수록 전혀 다른 모습들이 보인다. 어떤 순간에는 비효율적이고 혼잡하게 느껴지다가도, 다시 방문하면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좋은 도시는 단순히 깔끔하고 편리한 공간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도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복합적인 공간이다.
미래의 집은 왜 조립식으로 바뀌는가
모듈러 주택의 확산
최근 건축업계에서는 ‘모듈러 건축’이 중요한 흐름으로 떠오르고 있다. 모듈러 건축은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구조물을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다.
현재의 아파트는 겉보기에는 모두 동일해 보이지만 실제 시공 과정은 상당 부분 사람의 노동력에 의존한다. 거푸집 제작, 철근 작업, 마감 공정 등 대부분을 현장 인력이 직접 수행한다.
문제는 이 방식이 비용과 품질 관리 측면에서 한계를 가진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 건설 현장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의 비중이 매우 높다. 인건비 상승과 숙련도 문제, 안전사고 위험까지 겹치면서 기존 방식만으로는 안정적인 주택 공급이 어려워지고 있다.
모듈러 건축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공장에서 로봇이 규격화된 구조물을 정밀하게 생산하면 품질 편차가 줄어들고 공사 기간도 단축된다. 무엇보다 시공 오차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건식 공법이 중요한 이유
유현준 교수는 실제 건축 현장에서 습식 공법보다 건식 공법의 완성도가 더 높다고 설명한다.
습식 공법은 콘크리트처럼 물이 들어가는 공정을 의미한다. 현장에서 직접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숙련도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 반면 건식 공법은 공장에서 정밀하게 가공된 자재를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라 오차가 적다.
특히 목구조 건축처럼 미리 재단된 부재를 사용하는 방식은 1mm 수준의 정밀도를 유지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공사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미래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표준화된 품질’이 되기 때문이다.
조립식 주택은 저소득층만의 공간일까
일론 머스크가 직접 조립식 소형 주택에 거주한다는 사실은 큰 화제가 됐다. 많은 사람은 이를 절약이나 실험으로 보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일종의 ‘플렉스’로 해석되기도 한다.
극단적인 부자일수록 오히려 물질적 과시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미 충분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공간의 크기나 외형으로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미래의 조립식 주택이 양극화 구조 속에서 더 적극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더욱 개인화된 고급 주택으로 이동하겠지만, 일반 대중을 위한 주거는 최소 비용으로 대량 공급되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프라이버시는 더 비싸진다
게이티드 커뮤니티의 확대
미래 주거 환경에서 가장 크게 강화될 요소 중 하나는 프라이버시다.
과거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선호됐다. 세대수가 많고 커뮤니티 시설이 잘 갖춰진 공간이 안정적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고급 주거 트렌드는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초고가 주택일수록 세대수가 적고, 외부인의 접근이 어려운 구조를 갖는다. 대표적으로 한남동 UN빌리지나 이태원 고급 주택가는 통과 차량이 거의 없는 구조를 가진다.
막다른 골목 구조와 제한된 동선은 외부인의 접근을 줄이고 거주자의 프라이버시를 강화한다.
이는 단순한 주거 편의가 아니라 사회적 계층 구조와도 연결된다.
프라이버시는 왜 자산이 되는가
김대식 교수는 인간의 뇌가 기본적으로 낯선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는 상황을 불안하게 느낀다고 설명한다.
대표적인 공간이 엘리베이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모르는 사람과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있어야 하지만, 즉시 탈출할 수 있는 경로가 없다. 인간의 원시적 뇌는 이런 환경을 위험 상황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안 시스템, 경비 인력, 출입 통제 장치가 있는 공간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대단지 아파트가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심리적 안정감 때문이다.
게이트, CCTV, 경비 시스템, 커뮤니티 관리 체계 같은 여러 층의 보호 장치가 사람들에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제공한다.
결국 미래 도시에서는 ‘혼자 있을 수 있는 권리’ 자체가 점점 더 비싼 자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래의 집은 점점 더 작아질 가능성이 있다
최소 주거의 시대
유현준 교수는 미래 사회가 일정 수준 이상의 인플레이션과 자산 양극화를 겪게 되면, 국가가 최소한의 주거 공간을 공급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때 제공되는 공간은 지금의 일반적인 아파트 수준이 아니라 극도로 효율화된 최소 주거 형태일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 사례로 르코르뷔지에의 초기 아파트 모델이 언급된다.
르코르뷔지에는 인간의 신체 치수를 기준으로 최소한의 생활 공간을 설계했다. 공간의 폭과 높이, 동선까지 모두 인체 비율에 맞춰 계산했다.
이러한 개념은 현재의 고시원이나 캡슐형 주거와도 일정 부분 연결된다.
물론 미래의 최소 주거는 지금보다 훨씬 기술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핵심은 동일하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인원을 수용한다’는 논리다.
공유 공간 중심의 생활 방식
미래 주거에서는 개인 공간보다 공유 공간의 비중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이미 일부 공유 주택에서는 부엌과 거실, 세탁 시설을 공동으로 사용한다.
싱가포르의 초기 공공주택 정책 역시 비슷한 방향이었다. 더운 기후 때문에 실내 요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부엌이 없는 주택이 대량 공급되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은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는 유리하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줄이고, 생활의 상당 부분을 공공 공간에 의존하게 만든다.
로마 시대와 미래 도시의 공통점
김대식 교수는 미래 도시를 설명하며 고대 로마의 사례를 언급한다.
로마에는 크게 두 종류의 주거 형태가 있었다.
첫 번째는 ‘도무스’다. 귀족들이 거주하던 대형 저택 형태로, 집 안에 목욕탕과 극장까지 갖춘 경우도 있었다.
반면 일반 시민들은 ‘인슐라’라는 다세대 주택에 거주했다.
흥미로운 점은 프라이빗과 퍼블릭의 경계가 경제력에 따라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부유층은 집 안에서 대부분의 활동을 해결할 수 있었다. 목욕, 식사, 사교, 오락까지 모두 사적 공간 안에서 가능했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화장실, 부엌, 목욕 같은 기본 생활조차 외부 공간에 의존해야 했다.
이는 현대 도시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경제력이 높을수록 더 많은 기능을 개인 공간 안으로 가져오고, 경제력이 낮을수록 더 많은 생활 기능을 외부와 공유하게 되는 구조다.
AI 시대의 건축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AI는 이미 건물 디자인을 만들 수 있다
현재 AI는 외형 디자인 측면에서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
특정 스타일이나 형태를 입력하면 수많은 건축 이미지를 빠르게 생성할 수 있다.
문제는 실제 건축이 단순한 외형 디자인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건축은 구조 안전성, 동선, 예산, 법규, 사용 목적, 환경 조건 등 수많은 요소를 동시에 조율해야 하는 작업이다.
즉, 건축은 ‘복잡한 문제 해결 과정’에 가깝다.
왜 AI는 아직 건축가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는가
현재 생성형 AI는 대부분 결과물을 중심으로 학습한다.
하지만 건축 분야에는 결과물 데이터는 많아도 ‘설계 과정 데이터’가 부족하다.
건축가가 어떤 이유로 특정 결정을 내렸는지, 어떤 고민 끝에 공간을 배치했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거의 기록되지 않는다.
반면 프로그래밍은 코드 작성 과정 자체가 모두 기록된다.
그래서 AI가 코딩에서는 강력한 성능을 보이지만, 건축 설계에서는 아직 제한적이라는 설명이다.
미래의 AI 건축 설계
다만 미래에는 설계 과정 자체를 학습하는 AI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건축가가 설계하는 과정을 장기간 기록하면, AI는 단순 결과물이 아니라 ‘의사결정 패턴’을 학습할 수 있다.
실제로 MIT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개념의 연구가 진행됐다.
건축가가 반복적으로 내리는 선택을 AI가 기억하고, 이후 비슷한 상황에서 자동으로 대안을 생성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 복제가 아니라 ‘스타일 문법’을 학습하는 개념에 가깝다.
결국 미래의 AI는 특정 건축가의 사고 방식과 스타일을 모방하는 수준까지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인간은 결과보다 과정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왜 사람들은 비싼 경험에 돈을 쓰는가
AI 시대에는 대부분의 결과물이 매우 저렴하게 복제될 가능성이 높다.
건축, 그림, 음악, 음식까지 모두 비슷한 품질로 대량 생산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 결과물만 소비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미슐랭 레스토랑에서는 음식 자체보다 ‘설명’과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가치로 작용한다.
같은 재료와 맛이라도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철학이 담겼는지에 따라 가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건축 역시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AI가 비슷한 형태의 건물을 무한히 생산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오히려 인간이 직접 설계한 과정과 철학이 더 비싼 가치로 평가될 수 있다.
미래에는 스토리가 프리미엄이 된다
결국 미래 사회에서는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었는가’보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부유층은 단순히 좋은 집이 아니라 스토리와 철학이 담긴 공간을 원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일반 대중은 AI가 만든 효율적이고 저렴한 결과물을 소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양극화가 아니라 경험과 서사의 양극화라고 볼 수도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도시 구조를 바꿀 수 있다
자동차가 이동 공간이 아닌 생활 공간이 된다
현재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이동을 위한 공간이다.
하지만 완전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자동차의 역할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운전에 집중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자동차 내부는 하나의 생활 공간으로 변한다.
사람들은 자동차 안에서 업무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심지어 생활 자체를 이어갈 수도 있다.
유현준 교수는 이를 ‘움직이는 방’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자동차가 단순 교통수단이 아니라 집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건물 외벽에 자동차가 도킹하는 시대
미래에는 자동차가 건물 외벽에 직접 연결되는 형태도 상상할 수 있다.
영화 속 장면처럼 차량이 건물 측면에 도킹하고, 거실과 바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다만 이는 엄청난 에너지 소비와 복잡한 구조 문제를 동반한다.
자동차를 높은 층까지 이동시키려면 큰 에너지가 필요하고, 건물 구조 역시 기존과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또한 이동 과정에서 다른 집 내부가 노출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결국 미래 건축은 기술뿐 아니라 인간의 프라이버시와 동선까지 동시에 고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미래에는 다시 유목 생활이 돌아올 수도 있다
인류는 생각보다 오랜 기간 정착 생활을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역사 동안 인간은 이동하며 살아가는 유목 생활을 했다.
김대식 교수는 자율주행 기술이 발전하면 새로운 형태의 이동형 주거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대형 자율주행 차량 안에서 생활하며 도시를 이동하는 방식이다.
정기적으로 특정 스테이션에 도킹해 전기와 상하수도를 공급받고, 다시 이동하는 형태다.
현재의 캠핑카 개념과 비슷하지만 훨씬 고도화된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일부 가능성이 확인되고 있으며, 자율주행 기술이 완성되면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래 도시의 핵심은 결국 인간이다
AI와 자동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도시와 건축의 본질은 인간 경험에 있다.
사람들은 단순히 비를 피하기 위해 집에 사는 것이 아니다.
안전함을 느끼고 싶어 하고, 타인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을 공간을 원한다.
미래의 도시는 기술적으로 훨씬 정교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동시에 경제력에 따라 완전히 다른 형태의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분화될 가능성도 크다.
어떤 사람은 AI가 만든 최소 주거 공간에서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건축가의 철학과 스토리가 담긴 개인화된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다.
결국 미래 도시의 핵심 질문은 단순히 ‘어떤 기술이 등장하는가’가 아니다.
‘누가 어떤 경험을 누릴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더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