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활용 학습의 명암: 더 똑똑한 공부일까, 더 게으른 공부일까?
중간고사, 과제, 그리고 AI
중간고사 시즌이 다가오면, 대학생들은 시험 공부와 과제 제출 사이에서 숨 돌릴 틈이 없어진다. 이럴 때 AI는 흔히 ‘비밀 조력자’처럼 불린다. 질문 하나만 던지면 답안, 요약, 해석 등이 금세 나오는 편리함 때문이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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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를 AI에게 맡기는 것이 ‘정말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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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교육 현장에 깊이 들어오는 것이 진전일까, 위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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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태로 AI와 함께 공부해야 할까?
미국 고등학교 수업
한 미국 고등학교 수업에서, 학생들이 프레드릭 더글러스의 자서전을 읽고 토론하는 활동이 있었다. 프레드릭 더글러스는 노예였던 경험을 기록한 강연가이자 활동가로, 미국 역사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다.
그런데 한 학생이 그 자서전의 일부를 그대로 복사해 AI(예: ChatGPT)에 입력하자, AI는 해당 부분에 주석과 해설을 붙여 답을 주었다. 학생은 그 AI 생성 결과를 바탕으로 토론에 참여했다.
정작 수업의 본래 의도였던 ‘자기 성찰과 토론’은 뒤로 밀리고, ‘AI + 학생 의견’이 혼합된 발표가 되었다.
이 사례는 미국의 매체 The Atlantic에 실린 고등학생의 고백으로, 뉴욕 퀸스의 한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이 겪은 일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변화 조짐이 보인다.
과거 AI는 복잡한 수학 문제를 잘 풀지 못했지만, 지금은 어려운 수학 문제도 AI가 손쉽게 풀어낸다.
예를 들어, 모의평가의 고난도 문제도 AI는 금세 해답을 낼 수 있으며, 미국 어느 대학 졸업식에서는 학생이 AI와 함께 세리머니를 진행한 사례도 보도되었다.
즉, AI는 이미 교육 현장에서 떼어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영국과 한국 학생의 AI 활용 실태
영국: AI 사용자가 92%
영국의 고등교육정책연구소(HEPI)가 발표한 2025년 학생 생성형 AI 설문조사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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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에 AI를 사용해 본 적 있는 학생은 66%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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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에는 92%가 어떤 형태로든 AI를 사용해 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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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과제에 활용하는 비율도 크게 늘었다: 2024년 53% → 2025년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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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AI를 사용하는 주된 이유는 ‘개념 설명’, ‘논문 요약’, ‘연구 아이디어 제안’ 등이었다.
이 통계는 “AI를 한 번도 안 써 본 학생”이 8%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며, AI는 이미 학생들의 학습 환경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시사한다.
한국: 대학생의 AI 이용
한국에서는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에브리타임’ 설문조사에서 약 10명 중 7명이 AI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이 중 가장 많이 사용된 기능은 정보 검색(66.7%)이며, 글쓰기나 리포트 작성이 그 뒤를 이었다.
이 수치는 국내 여러 보도와 학생 커뮤니티 조사를 통해 확인된다.
한편, HEPI 보고서는 영국 내 불평등 문제도 지적한다. AI 사용률은 STEM 계열(과학·공학) 학생과 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학생 쪽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교수와 교육자들의 딜레마
AI가 널리 퍼지면서, 대학·교수들은 매우 복잡한 선택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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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일부 대학이 AI 사용을 전면 금지한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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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많은 대학이 교수 재량에 따라 AI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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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은 학생들이 AI만 의존해 과제를 제출하면, “스스로 사고하는 과정”이 사라지는 것을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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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입장에서는 AI를 사용하면 A 수준의 과제를 쉽게 얻는데, 안 쓸 이유가 없다.
일부 교수는 AI 사용을 허용하되, AI를 썼다면 그 출처를 명시하게 하거나, AI가 낸 답을 자신의 말로 다시 요약해 제출하라는 규칙을 두기도 한다.
하지만 AI가 만든 결과물을 탐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실천은 전 세계 교육 현장에서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AI 작성물 탐지와 감지 기술의 현실
실험: AI 답안의 ‘침투’
영국 리딩 대학 연구팀은 실제 평가 시스템에 AI가 작성한 답안을 몰래 끼워 넣는 실험을 진행했다.
학생이 작성한 답안 1,134개와 AI 작성 답안 63개를 섞어 제출한 상태에서, 채점자는 어느 것이 AI 것이냐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AI 답안의 94%가 미탐지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일부 모듈에서는 AI 답안이 학생답안보다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이 실험은 감지 기술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AI 답안을 인간 채점자가 거의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은, AI가 인간 문체를 매우 정교하게 모방하고 있다는 뜻이다.
감지 기술의 현재와 한계
현재 감지 도구들은 주로 ‘언어 변화도(perplexity)’나 문장 구조의 일관성 등을 기준 삼아 AI 생성 텍스트를 분별하려 한다.
하지만 PLOS ONE 실험처럼 거의 모든 AI 제출물이 미탐지된 사실은, 이런 기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AI 도구가 문장을 살짝 바꾸는 수준의 편집이나 문맥 조정을 하면 감지기가 오히려 잘못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는 보고가 있다.
이 상황을 비유하자면, 감지 도구는 스텔스기를 잡으려는 레이더 같고, AI는 레이더 반사면을 지닌 스텔스기처럼 “보이지 않는 기술”을 사용하는 셈이다.
따라서 감지 기술과 AI 생성 기술은 끊임없이 경쟁하는 관계로 볼 수밖에 없다.
학생 사고력과 AI 사용 패턴
블룸의 인지 과정 여섯 단계
미국의 교육학자 벤자민 블룸은 인간의 사고 과정을 여섯 단계로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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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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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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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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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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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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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하기
많은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이 여섯 단계를 기준으로 구성된다.
학생–AI 상호작용 분석
AI 회사인 Anthropic은 학생들이 Claude(자사의 AI)와 나눈 대화 100만 건 중 학업 관련 대화 574,740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학생들이 Claude를 이용한 가장 흔한 목적은 ‘교육 콘텐츠 생성 및 개선’(39.3%)이었다.
또 ‘기술적 설명 요청’ 등의 질문도 33.5% 수준으로 자주 나왔다.
즉, 학생들은 단순한 요약이나 개념 설명을 넘어서, 고차원 사고 영역으로 AI를 활용하고 있다.
블룸의 여섯 단계 중 ‘분석하기’, ‘평가하기’, ‘창조하기’ 영역이 바로 고차원 인지 기능인데, 학생들은 이 영역을 AI에게 자주 넘기는 구조가 되어 가고 있다.
이런 경향은 학생의 사고 발달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스스로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약해질 위험이 있다.
AI 튜터링의 실제와 한계
AI ‘학습 모드’의 등장
AI 기업들은 단순히 정답 중심의 도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학생 스스로 생각하게 유도하는 기능을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Claude for Education은 학습 모드를 통해 AI가 질문을 던지고 학생에게 사고를 자극하도록 설계되었다.
이 기능은 Wiley(출판사) 콘텐츠와 연동되며, 학생과 교사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참조하면서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다.
OpenAI에서도 ChatGPT의 ‘Study Mode’ 등 다양한 피드백 기능이 제공되고 있으며, 중간 점검을 위해 퀴즈나 플래시카드 형태의 질문을 섞는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실제 실험 결과
하버드 물리 수업
하버드대의 한 물리 수업에서 두 그룹으로 나눠 본 실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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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공부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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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튜터링 그룹
그 결과, AI 튜터링 그룹은 시험 점수에서 유의미한 향상을 보였다.
예를 들어, 사전 점수가 2.75에서 출발한 학생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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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공부 그룹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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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튜터링 그룹은 4.5 수준으로 향상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펜실베이니아의 비교 실험
펜실베이니아 연구팀은 세 그룹을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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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 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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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정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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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튜터링
이 실험에서 나타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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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 수행 능력: AI 활용 그룹(2, 3)이 일반 그룹보다 높았다. 특히 튜터링 그룹은 127% 향상이라는 수치도 보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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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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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정답 제공 그룹은 오히려 성적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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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터링 그룹은 상승은 했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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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과는 정답만 제공받는 방식이 학습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학생들의 경험
하버드 실험 참여 학생 중 일부는 이렇게 말했다.
“AI 튜터는 절대 정답만 주지 않았다. 계속 질문을 던지며 사고하게 만든다.”
“언제든 질문할 수 있는 점은 큰 위안이었다. 그런데 AI가 너무 완벽해서 내 실수나 빈틈을 스스로 찾는 연습이 줄었다.”
즉, AI 튜터링은 ‘보조자’로서는 유용할 수 있지만, 그 방식과 설계가 잘못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학생과 교수 모두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 것이다.
교육 산업 변화와 AI 기업 전략
시장 규모와 성장
교육 기술 시장 분석기업 HolonIQ 등에 따르면, AI 기반 교육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특히 ‘적응형 학습 보조도구(Adaptive Tutor)’ 분야가 연평균 40% 이상 성장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대학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직업교육 시장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기업과 교육 기관의 제휴
2025년 7월 8일, 미국의 주요 교원노조 AFT와 Microsoft, OpenAI, Anthropic은 파트너십을 맺고 국립 AI 교육 아카데미를 출범시켰다.
이 사업에 투입된 금액은 약 2,300만 달러(한화로 약 수백억 원대)다.
이 아카데미는 교사들에게 AI 교육 활용법을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Google, OpenAI 등도 학생 대상 무료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교육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교수들도 AI 사용
흥미롭게도, AI는 학생뿐 아니라 교수에게도 도입되고 있다.
Anthropic 보고서에 따르면, 교수들은 AI를 수업 자료 작성, 심사 기준 제작, 행정 업무 등에 활용하고 있으며, 일부는 채점 업무까지 AI에 일정 부분 위임하기도 한다.
이 변화는 ‘교사도 AI 사용자인 시대’가 이미 도래했음을 보여준다.
AI 활용 가이드
AI 시대에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해, 다음 3단계 학습 루틴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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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설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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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바로 답을 구하기보다는, “왜 그렇지?”, “어떤 반례가 있을까?”, “이 개념을 다른 예로 설명해 줘” 같은 질문을 던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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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정보 전달보다는 사고 확장을 유도하는 질문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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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검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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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준 답이나 요약을 교재·수업 노트와 비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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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틀린 점은 없는지, 누락된 부분은 없는지 스스로 체크하면서 사고력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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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피드백 기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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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답을 준 뒤, 스스로 “이 부분은 이렇게 이해했고,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는 메모를 남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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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을 반복하면, 자기 사고 과정이 명료해지고 AI를 도구로 쓰는 힘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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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루틴을 펜실베이니아 실험에서도 일부 참여 학생이 적용했더니, AI 정답만 받아 쓰기 그룹보다 시험 점수가 약 12% 더 높았다는 보고도 있다. (이 수치는 원 실험 요약에서 간접적으로 추정된 값이다.)
이 루틴은 ‘AI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AI와 함께 사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갈등과 숙제: AI와 함께할 교육의 미래
AI가 교육 현장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지금, 단순히 AI 금지냐 허용이냐의 논쟁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교수는 AI의 무분별한 사용을 막고 싶어 하고, 학생은 AI로 더 효율적인 학습을 원한다.
어떤 경우엔 학생이 쓴 글조차 AI가 작성한 것으로 오해받는 일도 벌어진다.
그 사이에서 AI 기업은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제안하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이제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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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허락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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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한다면 어떤 원칙과 규칙을 세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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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함께 사고하는 힘을 어떻게 길러야 할까?
다행히도, 한국에서도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교육 분야 영향 평가를 사회 분과에 포함시켰다는 소식이 있다.
정책·학교·현장 모두에서 토론과 실험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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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대신 공부해 주는 세상에서, ‘배운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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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식을 얻는 사람일까, 아니면 AI에게 학습시켜 주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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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함께하는 시대, 나만의 공부 방식은 무엇이 될까?
AI 시대의 교육은 효율 경쟁이 아니다.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힘을 잃지 않기 위한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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