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왕국의 몰락? 사스(SaaS) 기업 주가 폭락의 진짜 이유

한때 이런 말이 유행했다.

“소프트웨어는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


실제로 그랬다. 영업, 인사, 회계, 데이터 관리까지.

기업이 돌아가는 거의 모든 영역에 소프트웨어가 들어왔고,

그 중심에는 사스(SaaS) 기업들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소프트웨어 기업, 특히 구독형 모델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사스 기업들의 주가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테크주 전반이 반등하는 와중에도 유독 사스 기업들만 크게 흔들린다.


“이건 단순한 조정일까, 아니면 구조적인 변화의 신호일까?”


유럽 1위에서 11개월 만에 추락한 SAP, 무슨 일이 있었나

독일의 마이크로소프트라 불리던 SAP.

한때 유럽 시가총액 1위에 올랐던 이 기업의 주가가 최근 17개월 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불과 11개월 만에 시가총액 약 1,300억 달러가 증발했고,

주가는 고점 대비 약 25% 하락했다.

그 사이 유럽 시총 1위 자리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에게 넘어갔고,

두 기업의 시총 격차는 2배 이상 벌어졌다.


SAP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회사가 아니다.

기업의 인사·재무·공급망·회계를 총괄하는 ERP(전사적 자원관리)의 대표주자다.

이런 ‘핵심 시스템’을 제공하는 기업조차 흔들린다는 건,

문제가 개별 기업 차원이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에 있다는 신호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답을 찾으려면 먼저 ‘사스 기업’이 무엇인지부터 짚어봐야 한다.


사스(SaaS)는 어떻게 황금기를 맞이했나

사스(SaaS)는 Software as a Service,

즉 소프트웨어를 ‘구매’가 아니라 구독 형태로 제공하는 모델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이렇다.

  • 영업·CRM → Salesforce
  • 데이터베이스 → Oracle
  • ERP → SAP
  • 디자인 툴 → Adobe

2000년대 이후 인터넷과 클라우드가 확산되면서

기업들은 직접 서버를 구축할 필요 없이,

필요한 기능을 월 단위로 빌려 쓰기 시작했다.


이 구조는 완벽한 윈윈 모델이었다.

  • 기업 입장: 인건비 절감, 생산성 향상
  • 사스 기업 입장: 안정적인 반복 매출

이 시기에 넷스케이프 창업자이자 VC인 마크 앤드리슨은

“Software is eating the world”라는 말을 남긴다.

소프트웨어가 인간의 업무를 코드로 대체하며

모든 산업을 집어삼키고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정반대다.

AI가 소프트웨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클라르나 쇼크: “우리는 사스를 버렸다”

분위기를 바꾼 상징적인 사건이 하나 있다.

스웨덴 핀테크 기업 Klarna의 선언이다.


클라르나는 “선구매 후결제(BNPL)” 모델로 유명한 기업인데,

지난해 이런 발표를 했다.

“우리는 사스 독립에 성공했다.”

1년 만에 세일즈포스, 워크데이 등 약 1,200개 사스 구독을 해지했고,

그래프 데이터베이스 Neo4j를 기반으로

자체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CEO 세바스찬 시미아트코스키는

“AI 덕분에 가볍고 품질 좋은 기술 스택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비판도 있었다.

  • “IT 기업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 “IPO 앞두고 이미지 메이킹 아니냐”

하지만 이후 등장한 사건들이

이걸 단순한 쇼로 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AI 에이전트의 등장, 소프트웨어 개발 속도를 붕괴시키다

AI 모델 기업 Anthropic은

AI 에이전트 ‘클로드 코워크’를 공개했다.


이 도구의 핵심은 단순하다.

AI가 직접 컴퓨터를 조작한다.


놀라운 건 성능보다 제작 속도였다.

앤스로픽은 이 제품을 1주 반 만에 만들었다고 밝혔다.


기존 소프트웨어 개발은 어땠을까?

  • 수개월~수년
  • 대규모 개발팀
  • 높은 초기 비용

하지만 AI 코딩 도구, 특히 Claude Opus 4.5 같은 모델을 활용하면

10명이 하던 일을 1~2명이 하고,

나머지는 AI가 맡는다.


이른바 바이브 코딩 시대다.

비개발자도 자연어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열렸다.


이건 단순한 생산성 향상이 아니다.

사스의 존재 이유 자체를 흔드는 변화다.


탈(脫) 사스는 IT 기업만의 이야기일까?

“그건 클라르나나 가능한 이야기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국내에서도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카카오는 6년 만에 Oracle DB를 완전히 제거했다.


2019년부터 시작한 ‘글리제 프로젝트’.

지구에서 29광년 떨어진 적색왜성 이름을 딴 이유는 단순하다.

DB 이전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카카오는 오라클을 버렸다.

  • 설치 비용 + 연 22% 유지보수
  • 벤더 종속
  • 장기 비용 부담

결국 핵심 계열사를 오픈소스로 전환했고,

2023년 말 기준 완전 종료에 성공했다.


이제는 IT 기업이 아니어도,

일정 규모 + 전산팀 + AI 도구만 있다면

사스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컴파운드 스타트업의 등장, 사스의 자리를 위협하다

사스가 늘어나면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겼다.

구독 지옥이다.

  • 인사 SaaS
  • 영업 SaaS
  • 마케팅 SaaS
  • 재무 SaaS

기업 하나에 수백, 수천 개의 구독이 쌓인다.

서로 연동도 안 되고 관리도 어렵다.

이걸 흔히 ‘스위스 치즈 문제’라고 부른다.


이 틈을 파고든 게 컴파운드 스타트업이다.

여러 사스 기능을 하나의 통합 솔루션으로 제공한다.

  • CRM을 대체하려는 Rivo
  • 쇼피파이 셀러용 올인원 솔루션 Rivo(동명이사)

이들은 기존 사스를 “부분 기능”으로 쪼개

더 싸고, 더 단순한 대안을 제시한다.


사스 기업들의 진짜 위기: 비즈니스 모델 자체

사스 기업의 핵심 수익 구조는 간단하다.

직원 수 × 월 구독료

하지만 AI 에이전트가 사람을 대체하면 어떻게 될까?

직원 수가 줄어들고,

구독료 기반 매출도 함께 줄어든다.


실리콘밸리 VC들은 말한다.

“2027년쯤 되면 AI 에이전트가 기업의 핵심 데이터까지 접근할 것”


이건 중소형 사스 기업에게 치명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방향을 바꿨다.

“사스 대신 AI 에이전트 구독을 받겠다.”


하지만 과연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도입한 AI에

다시 구독료를 낼까?

이 질문에는 아직 명확한 답이 없다.


사스는 죽지 않는다. 다만, 변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사스의 시대는 끝났다.”

하지만 더 정확한 표현은 이거다.

사스는 죽지 않는다. 변신하지 않는 사스만 사라진다.

  • AI를 내재화한 기업
  • 기술적으로 깊은 해자를 가진 소프트웨어
  • 특정 산업에 깊이 파고든 수직형 솔루션

이런 기업들은 살아남는다.

반대로, 단순한 워크플로우 관리 도구는

AI에 가장 먼저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투자든, 비즈니스든

봐야 할 포인트는 하나다.

“이 기업은 AI 위에 올라타고 있는가, 아니면 AI에 의해 대체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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