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인간, 그리고 우리의 다음 수

어느 날 아침, 한 판의 대국에서 시작된 질문

2016년 서울.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세계의 시선은 한곳으로 모였다. 당시만 해도 많은 전문가는 “그래도 인간 최고수가 우세하지 않겠느냐”라고 예상했다. 왜냐하면 바둑은 단순한 계산 이상의 창의성과 직관이 필요한 게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알파고는 유럽 챔피언 판후이를 이미 5대 0으로 꺾은 전적이 있었고, 결국 이세돌마저 4대 1로 이겼다. 특히 알파고가 둔 기묘한 한 수는 기존 고수들의 정석을 깨는 패러다임 전환으로 평가되었다.

이세돌은 뒤늦게 이렇게 회고했다.

“바둑에 있어서 컴퓨터 따위가 나보다 우위에 있다면 나의 세상 무너지는 것과 진배없었다. 그리고 나의 세상이 무너졌다.”

이 사건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본격적으로 침범하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공장에 들어온 새로운 노동자

최신 자동차 공장에 들어서면 인간 노동자를 찾기 어렵다. 용접, 조립, 도장, 검사까지 대부분 로봇과 AI가 맡는다. 특히 AI는 휴식도 필요 없고, 오류도 거의 없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작업자가 자동차 문짝을 직접 들고 고정했다. 이제는 AI가 위치를 계산하면 로봇이 알아서 문짝을 가져와 장착한다. 품질 검사는 더 극적이다. 사람 귀로는 잘 구분되지 않는 작은 소음까지 센서는 잡아낸다. 다만, 너무 민감하다 보니 실제로는 정상인 부품을 불량으로 오판하는 경우도 생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AI가 스스로 학습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오판을 교정해 주면 그 경험이 AI의 데이터에 쌓인다. 결국 인간은 점차 필요 없어지고, 생산 라인은 무인화에 가까워진다.

앞으로는 인간과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투입될 전망이다. “사람이 하던 일을 그대로 하게 하려면 사람과 비슷한 몸을 가진 로봇이 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미래의 공장에서는 인간은 감독관으로만 존재할지 모른다.


창고를 지배하는 알고리즘

온라인 쇼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물류 창고에도 AI가 투입됐다. 바닥에 QR코드가 깔린 창고 안을 로봇이 달린다. 충돌하지 않도록 스스로 멈추고, 우회하며, 다시 목적지로 향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울타리 밖에 배치된다. 효율을 위해서다. AI는 사람보다 세 배 빠르게 일한다. 결국 남은 병목은 사람의 손에서 일어나는 포장 단계뿐이다.

최신형 창고에서는 아예 로봇 팔이 선반 사이를 오가며 상품을 직접 꺼낸다. 2035년까지 운수·물류 분야 일자리가 20% 이상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은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현실이다.


언어의 벽을 허무는 기계

컨퍼런스 현장에서 AI 통역기가 연사의 말을 받아 적는다. 동시에 수십 개 언어로 번역해 관객의 휴대전화에 띄운다. 속도와 정확성만 보면 놀라울 정도다.

그러나 인간 통역사와는 다르다. 연사의 억양, 표정, 몸짓에서 드러나는 뉘앙스는 포착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농담 섞인 발언이나 미묘한 협상 상황에서는 기계 번역이 한계에 부딪힌다.

그럼에도 AI 통역은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프리랜서 통역사 3명 중 1명은 일이 줄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기술은 통역사에게도 새로운 도구가 된다. 마치 “아이언맨의 자비스”처럼, 인간의 역량을 보조하는 개인 비서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AI를 직원 삼다

미국 진출을 노리는 한 스타트업. 과거 같으면 수천만 원이 드는 시장 조사와 법률 검토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AI에게 물어보면 된다. 데이터에서 패턴을 뽑아내고 최적의 결론을 도출하는 능력에서 인간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AI는 직접 코드를 짠다. 개발자가 “회원 탈퇴 기능을 만들어 줘”라고 지시하면 AI가 설계와 코드를 제시한다. 사람은 검토만 하면 된다. 효율은 열 배 이상이다.

이런 방식으로 한 명이 여러 업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그 결과 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인다. 특히 신입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기회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반대로, 경험 많은 인재의 몸값은 치솟는다.


의사와 간호사 옆의 조수

의료 현장에서도 AI는 필수적이다. 뇌졸중 환자의 MRI를 찍으면 AI가 몇 분 안에 “이 환자는 시술을 하면 살릴 수 있다” 혹은 “이미 손상돼 회복이 어렵다”라고 진단한다.

이는 의사에게 단순히 시간을 절약해 주는 차원을 넘어, 생명을 구하는 중요한 보조 장치다. 실제로 미국의 진료 지침에는 특정 분야에서 AI 사용을 권고할 정도다.

병원 내부에서는 약을 나르는 로봇도 활약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을 오가며 약을 전달한다. 간호사가 반복적으로 뛰어다닐 필요가 줄어든다. 다만, 아직 많은 로봇은 병원 구조나 통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활용도가 낮다.


농장에서 데이터 농사

축산업에도 AI가 들어왔다. 돼지 축사 천장에 카메라가 달려, 돼지가 지나가면 체중을 자동으로 계산한다. 저울에 한 마리씩 올리던 일을 없앤 것이다.

정확한 체중은 곧바로 수익과 연결된다. 출하 시 기준보다 가볍거나 무거우면 농가는 페널티를 받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노동자가 부족한 현실을 고려하면, AI는 오히려 농민의 든든한 동료일 수 있다.


창작의 세계로 들어온 기계

AI는 예술 영역에도 진입했다. 영화 제작에서 과거에는 캐릭터 디자인 하나를 위해 수개월이 걸렸다. 지금은 하루 만에 끝난다. 소규모 팀도 과거 대형 스튜디오의 작업을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완성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배우의 눈빛, 한 프레임의 미묘한 표정은 AI가 흉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 현장에서는 “AI가 노동을 줄여 주지만, 인간의 감각이 최종 품질을 결정한다”라는 말이 반복된다.


국가의 전략, 사회의 고민

AI 패권 경쟁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압도적이지만, 한국도 “100점은 못 만들더라도 95점은 도전하자”라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AI를 기반으로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동남아·중동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다. 특히 신입 화이트컬러 직종이 위기다. 자료 조사, 요약, 보고서 작성은 AI가 더 잘한다. 그렇다면 주니어들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기업과 사회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AI 시대에는 AI 기본소득이나 AI 연금 같은 새로운 분배 정책 논의도 시작되고 있다. AI가 만들어낸 부가가치를 어떻게 사회와 나눌 것인가가 핵심 과제다.


교육과 청년, 그리고 인간의 창의성

결국 문제는 현재의 10대다. 지금 학생들은 “학교-학원-성적”이라는 작은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AI는 단순히 인간을 대체하는 적이 아니다. 오히려 증폭기(앰플리파이어)와 같다.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 능력을 10배, 100배로 키워 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격차가 더 벌어진다.

따라서 교육은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재능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야 AI 시대에도 인간만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의 다음 수는 무엇인가?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은 그날 이후, 우리는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AI가 인간을 넘어선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경쟁할 것인가?”

바둑처럼 규칙이 명확한 영역에서는 AI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창의성과 맥락, 인간적 감각은 AI가 따라오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AI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세돌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도구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결국 인간의 진화를 이끌 것이다.”

이제 바둑판 위에서, 공장과 병원, 농장과 교실에서, 우리의 다음 수를 둘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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